[칼럼27]
보물로 지정된 언문 사랑편지
‘훈민정음 반포의 생생한 역사, 「나신걸 언문편지」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었다.
보물 「나신걸 언문편지」는 1490년에 안정 나씨 나신걸이 지금의 함경도(1470~1498까지 영안도) 경성 지방에서 군관으로 부임해 가면서 부인 신창 맹씨에게 안부와 함께 농사와 소작 등의 여러 가정사를 두루 챙기는 내용이 들어 있고, 나머지 한 통은 당시 군관 등 남성들이 입던 포인 철릭을 보내달라는 이야기와 함께 자기 부인을 위해 분과 바늘을 사서 보낸다는 내용의 편지이다.
군관으로 부임해갈 때 미리 집에 가서 당신과 가족들을 봐야 하는데 못보고 가니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는가 하며 애통해하거나, 군복무 도중 부인에게 분(화장품)과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며 울었다는 등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적어 보낸 사랑편지이다.
2011년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에 있던 조선 시대 신창 맹씨 묘안 피장자의 머리맡에서 여러 번 접힌 상태로 발견되었다.
편지의 제작 시기는 내용 중 1470~1498년 동안 쓰인 함경도의 옛 지명인 ‘영안도’라는 말이 보이는 점과 나신걸이 함경도에서 군관 생활을 한 시기가 1490년대라는 점을 통해 1490년대에 쓰였을 것으로 감안하면,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불과 45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 지역과 하급관리에게까지 훈민정음이 널리 보급되었던 실상을 알 수 있다.
특히 조선 시대에 훈민정음이 여성 중심의 글이었다고 인식되었던 것과 달리, 하급 무관 나신걸이 유려하고 막힘없이 쓴 것을 보면, 조선 초기부터 남성들 역시 훈민정음을 익숙하게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기존에는 조선 시대 관청에서 간행된 문헌만으로는 훈민정음이 대중에 어느 정도까지 보급되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면, 「나신걸 언문편지」가 발견됨으로써 훈민정음이 조선 백성들의 실생활 속에서 널리 쓰인 사실을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아울러, 해당 유물은 현재까지 발견된 언문편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자료이자 상대방에 대한 호칭, 높임말 사용 등 15세기 언어생활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앞으로 조선 초기 백성들의 삶과 가정 경영의 실태, 농경문화, 여성들의 생활, 문관 복식, 국어사연구를 하는 데 있어 활발하게 활용될 가치가 충분하며, 무엇보다도 훈민정음 반포의 실상을 알려주는 언어학적 사료로서 학술적ㆍ역사적 의의가 매우 클것이라고 여겨진다.
세종대왕이 1443년 창제하여 1446년 반포한 「훈민정음」이 구한말에는 '나라의 글'이란 뜻으로 '국문(國文)'이라 불리다가
'대한제국의 글'이라는 뜻으로 '한문(韓文)'이라 고쳐 불러보았으나 이것은 중국의 '한문(漢文)'과 음이 같다는 이유로 얼마 못가서 일제강점기인 1912년경에 주시경 선생이 저술한 《소리갈》이라는 책에서 ‘큰 글, 하나밖에 없는 글, 대한제국의 글자’라는 의미를 담았다면서 붙여진 ‘한글’이라는 명칭으로 창제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바뀌어간 훈민정음의 실용성에 대한 실체를 보여준 1490년대에 언문으로 작성된 「나신걸 언문 편지」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훈민정음의 위대성을 깨우쳐 주는 것 같아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연애편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