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58]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에 숨겨진 이야기 두 번째
관리자 | 조회 205
[칼럼58]
김태준은 이야기를 들은 후, ‘한남서림’에 있는 문화재 수집가이자 연구가였던 간송 전형필을 찾아가서 해례본의 존재 사실을 알렸다. 한남서림은 백두용이 1905년에 종로구 관훈동에 세운 고서점이었는데, 전형필이 26세 때인 1932년에 인수하여 이순황에게 운영을 맡긴 곳으로 평소 전형필은 이곳을 문화재의 수집 장소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동안 훈민정음의 행방을 애타게 찾고 있었던 전형필은 흥분되어 곧바로 이용준에게 가자고 재촉했다. 훈민정음해례본의 진본 여부와 매각 의사를 확인하고 있었던 김태준은 한성에 있는 이용준의 거처로 찾아가서 전형필의 구매 의사를 전하고 이용준과 함께 안동의 시골집으로 찾아갔다.
훈민정음해례본을 마주한 김태준이 자세히 살펴보니 표지와 맨 앞의 두 엽이 없었다. 이를 눈치챈 이용준이 거짓말로 둘러대기를 연산군 당시 언문 책 소지자를 엄하게 벌한다는 어명을 피하고자 첫머리 2장을 떼어버려 없는 상태로 전해져 왔다고 하였지만, 실은 이용준이 처가인 긍구당 소유임을 숨기기 위해 장서인 찍힌 부분을 뜯어낸 것이었다.
박헌영, 김상룡 등으로 구성된 사회주의 지하조직으로서 인민전선부를 맡고 있었던 김태준은 전형필에게 받을 소개비를 ‘경성 콤그룹’의 활동 자금으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형필에게 제대로 구전을 받으려면 낙장 되어 있는 부분을 복원하여 원본처럼 만들어 놓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여 경성제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세종실록’을 이용하여 복원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미 자신에게 포섭되어 지하 조직원이 된 이용준이 혹시라도 체포된다면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이 계획을 밝히지 않았고, 이용준 역시 그 책이 자신의 가문에서 전해 온 것이 아니라 처가인 광산 김씨 종택 긍구당에서 훔쳐내어 앞 장 두 장을 떼어낸 것이라고 거짓말한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이렇게 치밀한 계획을 세운 김태준은 남보다 탁월한 자신의 암기력을 활용하여 경성제대 도서관에서 세종실록을 열람하여 세종 28년(1446) 9월 29일의 훈민정음 창제에 관한 기사를 외워다가 안평대군의 서체를 잘 써서 서주(西洲)라는 호로 교남서화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서예가로 인정받기도 했던 이용준에게 쓰게 하였다.
김태준과 이용준은 낙장 된 부분의 내용 복원과 안평대군 글씨체의 연습을 끝내고, 훈민정음 종이와 비슷한 누런색의 한지를 만들기 위하여 궁리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경성 콤그룹’에 대한 검거 열풍이 불자 두 사람은 안동에 있는 이용준의 집으로 가서 한지를 쇠죽솥에 넣고 삶는 방식으로 누런색이 나게 하는 데 성공하여 이용준이 안평대군 서체로 글씨를 써서 복원한 후 전형필에게 서신을 보내어 구매 의사를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로 알려져 옥살이까지 한 김태준을 직접 접촉해서 훈민정음을 사들이면 어떤 후환이 닥칠지 모를 위험이 있는 데다가, 김태준이 다시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가 이 사실을 발설하면 그동안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수집해 두었던 각종 문화재급 수장품과 간송 문고까지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하여 구매 의사를 타진한 편지를 불사른 후 한남서림의 관리인 이순황에게 연락하여 달라고 부탁하자 이순황은 자신이 아니면 누가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면서 망설임 없이 쾌히 응해주었다.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이사장 박 재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