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60] 탐욕 때문에 고통 받는 <훈민정음해례본> 이야기 첫 번째
관리자 | 조회 200
[칼럼 60]
탐욕 때문에 고통 받는 <훈민정음해례본> 이야기 첫 번째
69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훈민정음해례본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산 국보 단 한 권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다가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62년 만인 2008년 7월에 경북 상주에서 또 한 권의 훈민정음해례본 판본이 발견됐다.
경북 상주시 낙동면에 사는 고서 수집가인 배익기 씨가 집수리를 위해 짐을 정리하다 발견했다며 안동 MBC에 제보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래서 최초의 발견지를 따서 이를 ‘상주본’이라고 부른다.
‘상주본’은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세칭 ‘안동본’ 훈민정음해례본과 같은 판본으로 서문 4장과 뒷부분 1장이 소실돼 있지만, 보존 상태는 오히려 ‘안동본’ 보다 좋을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해례본과는 다르게 중국 운서에서 다루는 당시 연구자의 주석이 있다는 점 때문에 온 나라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가기에, 충분한 대사건이었다.
이런 이유로 2008년 발견 당시에는 학술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도하 각 언론에서 대서특필했으나 현재는 ‘안동본’과 내용이 같다는 점을 들어서 학술적으로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 평가 절하하고 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라는 속담이 생각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세칭 ‘상주본’이 발견됐을 때는 전문가들의 논평을 곁들인 언론 기사를 통해서 두 번째 훈민정음해례본의 가치가 1조가 된다는 얘기가 회자해 대단한 보물이라는 점을 부각하느라고 여론몰이했다. 그러나 이렇게 주목받은 1조라는 가치가 오히려 부메랑이 돼 이 평가액을 근거로 현 소유자인 배익기 씨가 10분의 1인 1000억 원을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후 배익기 씨는 1000억 원에 국가에 팔겠다고 주장하면서 실체의 공개를 갖은 핑계를 대면서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을 연출했다.
그래서 ‘상주본’이 외국으로 유출되고 조작돼 훈민정음의 기원에 대한 신뢰성을 낮출 거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국민의 관심은 이 상주본의 출처에 관심을 끌게 됐다.
학계와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를 의식한 듯 순수한 학술적인 측면에서 위와 같은 외국으로 유출과 조작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대국민 설득 작업에 발 벗고 나선다. 즉 ‘안동본’이 존재하기 때문에 훈민정음해례본의 내용은 이미 다 알려진 상황에서 누군가의 조작으로 기존의 내용을 뒤집을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상주본’이 처음에 공개되었을 때 이미 ‘안동본’과 '내용 같음'으로 검토가 끝났기 때문에 ‘안동본’과 ‘상주본’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면 제일 먼저 조작을 의심할 테니 이를 조작할 사람은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리고 ‘상주본’에는 후대 인물의 개인적인 주석이 필사돼 있어서 학술 가치가 ‘안동본’ 보다 크다고 호들갑을 떨더니, 인제 와서는 그 필사가 중요한 학술 가치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학술적으로 중요한 내용은 옛날에도 별도의 문집으로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논조를 펼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사족을 붙이기를 만약 첫 장이 있었다면 그나마 학술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졌을 텐데 ‘상주본’도 첫 장이 없는 건 마찬가지여서 국어학자들은 사실 학술 자료로서의 ‘상주본’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렇게 궤변으로 국민의 관심을 호도한다고 해서 ‘상주본’이 가진 가치가 폄훼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왜냐면 ‘상주본’도 엄연히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고 국보로 지정받은 훈민정음해례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중한 유물이 해외로 유출된다거나 소실이 될 때는 학술적으론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억지 주장을 백번 양보해서 받아들인다고 해도 상징적으로는 국격을 떨어뜨릴 정도로 타격이 대단히 클 수밖에 없는 일대 사건이라는 점을 지속해서 알려야 한다.
물론 ‘상주본’이 귀중한 국가 보물이지만 과연 도난당한 장물일 가능성이 상당한 문화재까지 1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세금까지 투자하면서 사들여야 하는가에 논란은 존재할 것이다.
또한 소장자의 요구를 국가가 받아들이는 선례를 남기면 차후 절도 문화재 처리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묵과할 수는 없다.
이렇게 배익기 씨의 1000억 원 요구설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상주본’에 대해 문화재청은 무가지보 즉, 유일의 문화유산임을 언급하며 가치를 따질 순 없지만, 굳이 따지면 1조 이상이라고 가격을 매겼다는 반론이 제기돼 '거짓말하지 않았는가.'라는 의혹이 나왔다.
이에 대해서 문화재청은 가격을 매긴 방식은 시민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해서 감정가가 매겨진 ‘직지심체요절’의 가격과 비교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반대의견으로 문화유산이 그만큼 소중한 것이고,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함은 신중치 못하다는 말 또한 있다. 사실 일반 미술품과는 달리 서적이라는 것은 실물 자체보다는 속에 담긴 텍스트의 내용이 중요한데, 학술 가치만을 생각한다면 ‘상주본’은 ‘안동본’과 같은 판본이라서 독자적인 가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안동본’과 함께 두 권밖에 남지 않은 원본으로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기록물이라는 상징적인 가치가 이 책에 대한 적절한 경제적 평가를 힘들게 한다고 해서 현 점유자가 억지로 금전적 가치 평가라는 진흙탕 속에 처박아 놓는 행위는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고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사단법인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재성